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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天 5922年5月26日 月曜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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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강 2 1세기와 생명론 패러다임 김용운 박사(한양대 교수, 수학문화 연구소 소장) 소개 : 송순현 원장(정신세계원) 안녕하십니까. 오늘 얘기의 주제는 지난 한세기 동안 신과학 운동이 어떻게 일 어났으며 앞으로 2 1세기에는 어떤 방 향으로 전개해 나갈 것인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2 0세기 초 또는 1 9세기 말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만, 그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물리학의 문제가 거의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남은 문제라면 아주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작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2 0세기 초 1 9 0 1년의 세계 수학자 대회에서 당 시 세계의 가장 지도적인 수학자였던 슈바르트는 모 든 수학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수학적인 논리 가 정확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 0세기 초를 지나면서 당시 과학자들이 시시하게 여겼던 과학의 분야에서 엄청난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하나는 상대성 원리입니다. 그것은 행 성의 궤도 문제에서 나온 것으로 뉴튼 역학으로 설 명이 안되는 약간의 가벼운 문제였는데 그것이 근본 적인 세계관을 바꾸는 상대성 원리를 낳았던 것입니 다. 또 하이젠베르그는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뉴튼 역학으로는 도저히 해결 못하는 세계가 있음을 설명 했습니다. 수학의 세계에서는 불확정성이 과거 1 9 세기 2 0세기 초까지에 있었던 낙관적인 과학주의에 대한 도전이었고 그 세계가 무너져감을 암시하는 대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오늘 제가 주제 삼고 싶은 것 은 포앵카레(Jules Henri Poincare)가 제기했던 삼체(세개의 천체)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뉴튼 역학 으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세개의 전 체에 운동이 일어날 때는 궤도계산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 았습니다. 당시 뉴튼 역학으로 모든 천체의 궤도가 완전히 계산된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것은 두 개의 전체가 운동할 경우에만 성립하는 것이지 삼체-세 개의 천체가 운동할 경우에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 다는 것을 포앵카레가 제시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는 삼체문제의 중요성에 대해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최근 카오스 이론이 나오고 복잡계의 과학이 등장하면서 세삼스 럽게 그 전에 포앵카레가 제시했던 이론을 다시 보 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7 0년 전의 논문속에 이 미 복잡계라는 위대한 과학이 새로 등장하고 있었다 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과학, 순수한 한 과학자에 의해 발견된 과학이 그간에 있었던 뉴튼역학, 또 멀리 이 야기 한다면 모든 것을 수로써 표현할 수 있다는 피 타고라스적인 철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그동안 우리가 믿고 있던 공리론의 수학, 공리론의 물리학들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데카 르트에 의한 기계론적 세계관이라든지 모든 것을 기 본적인 원소, 이를테면 희랍의 탈레스가 주장한 아 르케 같은 기본적인 원리에서부터 설명한다는 환원 주의의 철학이 부정되는 것이었습니다. 수학의 세계에는 모든 것이 A면 B이다라는 단 순한 결정론의 세계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확률론의 세계, 둘로 나눠져 있었는데, 이제는 결정론도 확률 론도 아닌 제3의 수학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방법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른바삼체문제라던지 일기예보 문 제와 같은 것 말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일기예보 같은 것은 정확히 결정론적으로는 설 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확률론도 아닌데, 세 개 이상의 요소가 있을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 다. 공리 설정을 해서 정리를 만들고 이렇게 추구해 나갔던 수학의 체계가 더 이상 설득력이 없게 된 것 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형식적인 문제로 생각되었 던 것이 컴퓨터의 등장으로 다시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수학에서 카오스 이론이 나왔던 것은 단 순한 2차 방정식에서였습니다. 포물선을 그리고 X 가 변했을 때 Y값을 찾아 낸다는 것은 중학생의 2 차 방정식 숙제에도 쉽게 나오는 결정론적인 것이었 는데 X가 일정한 값일 경우에, 0에서 1사이의 값을 대입하고 거기서 얻은 값을 다음의 값에 대입하는 식의 반복대입 방정식을 이용해 2차방정식을 생각 해보니까 이것이 엉뚱하게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결정론도 아니고 확률도 아니며 때때로 우리 가 예상못하는 행동을 나타내는 기묘한 세계라는 것 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수학자들에게 큰 충격이었 습니다. 시시한 2차방정식, 그것도 아주 적은 수의 범위내에 겉잡을 수 없는 세계가 우리의 현실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카오스를 살펴보니 지 금까지 우리가 지나치게 데카르트, 뉴튼의 과학을 믿어왔고 그 이전을 이야기 한다면 너무나 피타고라 스나 탈레스의 이론을 신봉한 선입견 때문에무시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실제 있어서는 오히려 탈레스보 다도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모든 것은 변한다’ 는 것, 또는 동양사람에게 친근하게 설명하면 불교 적인‘제행무상’이라는 관점으로 돌아가야겠더라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것이 변해가고, 일어나는 것은 피드백되며 하나에 연기(緣起)되어 다음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때, 지금까지의 과학 이 아닌 새로운 과학이 탄생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 습니다. 과학을 포함해서 사회적인 또는 천문학적인 모든 현상은 단순한 하나의 원인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데 있어서 적 어도 세 개 이상의 요소들이 서로 작용하며 나타난 다는 말입니다. 불교적인 표현을 한다면 연기(인연) 관계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지 하나의 원인이 있어 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카오스 이론에는 몇 가지의 기본적인 요소가 있 습니다. 하나는 되먹임-과학에서는 피드백 ( f e e d b a c k )이라고 합니다. 피드백은 위나에 의해서 과학적으로 이용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현상적으로 지금 있던 값을 그 다음에 넣었을 때-아까 설명했던 2차 방정식의 간단한 예에서 보듯이 지금 나온 값을 다음에 계속 대입하는 되먹임 현상을 말하는데 불교 적인 개념으로 이야기하면 업의 세계입니다. 즉 지 금 현실적으로 내가 있지만 이것은 과거의 업에 의 해서 지금의 내가 나타난 겁니다. 업이란 단어는 지 나치게 종교적인 의미가 있습니다마는, 실지 과학적 으로 생각해 본다 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여러 분들을 대하고 있는 이 현실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인연, 모든 사건들이 오늘의 현실에 집약되어있는 것이고 그 결과 여러분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나비효과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 있더라도 크리티컬 모먼트-즉 어느 결정적인 순간 에는 이것이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전개될 수 있 다는 것입니다. 요즘 이 카오스 이론이 현실적으로 대단히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정보 화시대가 진행되면서 옛날 한국에 있어서 전혀 생각 할 수 없던 것, 먼 수천년 전에 있었던 일들이 지금 우리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세계가 따로따로이고 겉잡을 수 없는 혼 돈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수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프랙탈, 불교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일즉다 다즉일 (一則多多則一)로서 하나가 전체를 표현하고 있다 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무의식 적으로‘이것은 무엇이다’라고 분류하는데 있습니 다. 가령 나뭇가지 하나를 보고 이것이 무슨 나무인 지를 아는데, 나뭇가지 하나가 전체를 표현하고 있 기 때문이죠. 한사람을 보더라도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한국인을 표현하 고 있다는 것, 이 프랙탈적인 사건을 다시 한번 이 야기 한다면, 현상은 하나의 원인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상호작용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기의 사상은 지금 일어나고 있 는 하나의 사상(事象)이 과거에 있었던 일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적은 일이 갑자기 엄청난 일 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를 발견한 로렌스는‘북경 에서 날았던 나비의 날개짓이 몇일 뒤 뉴욕에 폭풍 을 일으킬 수 있다’고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습 니다. 실제로 그가 컴퓨터의 모델로 나타내 보인 일 기(日氣)의 궤도에는 그것이 여실히 나타나 있습니 다. 여러분들도 일상에서 현실적으로 전혀 시시했던 일이 우리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가끔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일즉다 다즉일, 프랙탈, 자기 닮음의 세계입니다. 인식하지 않고 있을 뿐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들이 곳곳에 숨 어서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믿 어왔던 과학의 업적 말하자면 우리가 구축해왔던 지 적세계라는 것이 완전히 변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좋은 예로 진화론을 들 수 있습니다. 찰스 다윈이 얘기했던 진화론을 통해 우리는 적자생 존의 경쟁에 의해서 강한 놈이 언제든지 살아남는다 고 배워 왔습니다만 지금의 생각(저는 이것을 생명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에 의하면 그둘은 함 께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패러다임이라는것 은 기계론적인, 또는 요소 환원적인 세계관을 부정 하고 모든 현상을 시간의 흐름속에서 본다는 것이 죠. 생명이 태어나고 짝짓기를 하고 죽어가며, 다시 그것을 되풀이하는 생명적인 틀에서 본다는 뜻에서 생명패러다임이라고 합니다. 그런 눈으로 본다면 진 화론 환경이라는 것은 단순히 강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자는 약자가 있음으로서 살고 또 약자는 강자가 있음으로서 자기가 생존하기 위한 새 로운 무기를 갖추게 되는,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만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환경과 함께 공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까 뇌에 있어서의 프랙탈 현상, 칼 프리브람이 얘기 했던 뇌 의 홀로그래픽 모델이라든지, 데이빗 봄이 얘기한 우주의 프랙탈 모델 등 모든 것이 한국인인 나를 표 현 한다는 의견과 같습니다. 가령 우리의 경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최근 경제사에서 아담 스미스가 자유방임을 부르짓다가 그 다음 계획경제가 좋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사회주 의 경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이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이야기했던‘역 사의 종언’입니다. 그는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이데 올로기로서 경제를 개혁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습 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가 좋다고 해서 다시 아담 스미스의 이론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그래서 역 사에 이 이상은 없다, 이데올로기의 역사는 끝났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새로운 정 보화 시대, 새로운 카오스 시대, 새로운 복잡계의 경제가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경 제 행위가 금방 남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말합니 다. 유명한 조지 소로스-세계의 금융가입니다만-는 “내가 오늘 투자를 하는 것은 시세를 보고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투자하는 행위가 다음 시세 를 결정하기 때문에 언제나 최적이라는 것이 없고 항상 차석으로 경제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뜻에서 새로운 정보화 시대, 새로운 카오스 시대의 경제학이 태어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사회도 그 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 계신 여러분이 대부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생리학이 또한 그렇습니다. 그 전 생리학으로 보면, 어디에 병균이 있을 때 그 병 균을 제거하면 병이 났는다고 했습니다만 오히려 우 리의 생체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전자 등 모든 것을 그러한 관계 속에서 보아야한다, 병리학, 대뇌생리학, 우주, 진 화론, 이 모든 것이 생명론 패러다임에서 새로이 해 석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 생 명 패러다임이라는 관점, 모든 지적인 세계를 통틀 어서 현재 일어나는 세계를 다시 보는 눈을 갖추자 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약 4 0년 전, S. P. Snown-영국의 캠 브리지대라고 생각합니다-교수의 유명한 강의록이 있는데‘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벽’이라는 글입니 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두 개의 학문을 가지고 왔 습니다. 그리고 이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학문 사이에 전혀 대화가 없었습니다. 가령 나는 전 공이 수학이기에 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나 는 사회학이 전공이기 때문에 물리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등, 나는 의사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는 전 혀 모른다. 오히려 다른 학문에 대해 무식한 것이 현재 자신의 전공 학문의 깊이를 자랑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른바 전공 바보들, 그 전공밖에 모르는 바보들이 우리의 지적 세계를 지배해 왔는데 이제 이 복잡계라든지 생명패러다임의 측면에서는 바뀌어야 될 것입니다. 이제는 서로가 시간의 뒤에서 영향을 주고 받는 세계관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한 특출난 교수가 나와 노자 붐이 일고 있습니다. 왜 갑작스럽게 노자가 이 시기에 화제가 되고 있는가? 노장사상은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무 위자연, 가만히 있어도 자연적으로 무엇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도생일 (道生一), 도가 기본적으로 무슨 힘, 에너지를 가지 고 있어서 하나를 만들고 하나가 두 개로 분리되며 그 둘과 처음의 하나가 합해져서 셋이 됩니다. 아까 이야기 했던 삼체 문제가 바로 이겁니다. 이때 카오 스가 생기고 모든 것이 태어납니다. 이 카오스라는 것은 단순한 혼돈이 아니라 엄청난 생명력을 지닌것 으로, 모든 것은 카오스에서 태어났다는 이것이 노 장 사상의 기본입니다. 노자의 사상을 우리가 그대 로 현실에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은 노자의 무위 자연 카오스화가 되면 하나의 결과 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즉 가만둬도 될 것은 잘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새로운 과 학의 입장에서 일침을 가하는 것이 노벨화학상을 받 은 프리고진이었습니다. 프리고진은 자기조직화라 는 것을 얘기했습니다. 산일(散一)구조, 말하자면 카오스가 일어나는 어떤 상태에서 새로운 것이 창조 되어 질서가 형성되는 이 과정을 산일구조라고 하는 데 그렇게 새로운 것이 되는 것을 자기조직화라고 했습니다. 얼핏보면 노자가 이야기하는 자연에 의해 서 새로운 질서가 창조된다는 것과 프리고진의 자기 조직화는 매우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것은 커 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 카 오스가 일어나 창조하는 과정에서 결과는 무한에 가 깝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카오스의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직전에 개입하는 어떤 요소 하나가 그 결과를 엄청나게 다르게 한다는 것입니 다. 단순한 무위자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서양과학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합니다. 그리 고 그것은 분명합니다.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은 처 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2 0세기초에 그토록 자랑하고 자신만만했던 서양의 과학자들이 새로 등장하는 과 학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어 떻게 보면 서양의 과학, 과거 뉴튼·데카르트적인 과학에 내려진 사형 선고였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서양 과학의 흐름속에서 프리고진과 같은 과학자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이 자기조직화가 무위자연으로 보이면서도 전혀 다르다고 합니다. 생명론 패러다임 에서는 흔히 하듯 요소를 분석해서 분석된 요소에서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요소 사이의 관계를 보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전체론적인 홀로이즘과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마는 이것은 결코 낙관적인 전체주 의가 아닙니다. 말하자면음양론에 있어서의 단순한 낙관주의라던가 노자사상에 있어서 무위자연의 세 계 그것이 아닌, 그것 보다 더 깊은 과학적인 배경 이 있는 프리고진의 사상임을 확실히 구별해야 하겠 습니다. 분명히 과거 동양의 노·장자, 불교에도 그 러한 깊은 철학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마는 현대 의 과학 앞에서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러한 과학적인 것을 반드시 보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계는 분명하 지는 않지만 서로간에 공통적인 영역이 있다고 믿어 지는 세계입니다. 우리 현재의 의식이 과거 인류역 사 이래 전의식이 모여진 집단적인 무의식을 표현하 고 있다는, 소위 불교로 말하면 유식론(唯識論), 아 라야식은 내 의식이 아니라 내 조상의 의식이었다는 유식론이며, 또 칼융이 얘기하는 싱크로니스트의사 상, 인류의 집합 무의식을 개인이 갖고 있다는 사상 을 말합니다. 또 데이빗 봄이라든지, 칼 프리브람 같은 사람들의 뇌의 홀로그래픽 모델, 세계에 대한 우주 모델, 우리가 이야기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암재계(暗在界)와 눈에 보이는 세계-명재계 (明在界)가 하나가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전 생을 경험한다는 사람들을 봅니다. 또 기적같은 것 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감지할 수가 있느 냐? 보이지 않는 어떤 전파, 알기 쉽게 이야기 한다 면 텔레비젼의 전파는 이 방에 가득차 있습니다만 이것이 텔레비젼의 화상에 나타난 것은 그것을 수용 할 수 있는 인연의 장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과 같습 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할 분야 가 아닌가 합니다. 2 0세기의 과학이 새로운 부정을 통해 상대성 원 리라든지 삼체 문제를 내놓았습니다마는 2 0세기말, 2 1세기가 된 이 시점에서 우리의 과학 분야는 지금 까지 신비적인 것이나 시시한 것, 모든 사람을 납득 시킬 수 없는 우연적인 사건,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주변에서 많은 공통영역을 가지면서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과학자 들, 지적생활을 하는 여러분들이 자기의 전문분야를 고수하면서도 현상일반을 대하는 심리학적인 문제, 물리학의 양자학적인 문제, 우주론의 문제, 진화의 문제, 사회의 문제, 경제의 문제 등 모두에 나타나 는 현상에 대해서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 서양과학과 동양과학이 근본적으로 어디가 다른 가. 계속 이야기합니다만 서양철학의 아버지를 탈레 스라고 합니다. 탈레스는 모든 물질을 물로부터 해 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서양철학, 서양과학의 출발 이 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은 물질세계, 자연세계를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철학은 놀라움으로 부터 시작한다는데 아마도 탈레스는 에게해의 넓은 바다를 보고 놀랐는지도 모릅니다. 같은 놀라움이라 도 석가모니는 생노병사, 인간의 현실-실존 문제 등, 놀라움의 대상을 인간으로 했습니다. 노·장자 의 자연철학도 있습니다. 그러나노·장자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문제로 갑니다. 같은 합리적인 것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 과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서양과 동양의 학문, 지적세계의 다름을 만들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이제 2 1세기의 과학, 21세기의 지적세계, 이른 바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생명론 패러다임에는 물질 세계와 인간세계를 함께 보고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세계가 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으 로 저는 2 1세기의 생명론 패러다임을 복잡계의 사 고에 기반을 둔 동양철학-동양철학이라는 것은 불 교와 노·장자의 사상을 포함한 것입니다-그러한 전체적인 사고와 서양이 지금까지 구축해 왔던 방법 론을 함께 구축할 수 있는 복잡계-카오스의 사고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 자면 우리가 2 1세기의 첫 출발점에서 과학자들이 관심가지기에 아주 시시한 것,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여겨왔던 그 분야가 알고 보니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엄청난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 고 있으며 거기에서 과학으로 도저히 설명될 수 없 던 것들이 낱낱이 밝혀져 가고 지금도 그 과정은 계 속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갖 는 인간의 실존문제, 마음의 문제, 양자론 세계의 의문, 이러한 것이 그동안 일부 과학자들과 강당에 서 이루어지는 과학 아카데미즘에서 무시되어 왔지 만 분명히 우리에게 새로운 지적세계를 열어줄 것으 로 믿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이 각 분야에서 하나 씩 하나씩 그 세계를 접근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앞날에 대성공 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김 용 운(金容雲, Kim Yong Woon) 일본 와세다 공대 수학, 미국 어번대 대학원(이학박 사), 캐나다 엘버타대(이학박사) 경력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조교수, 한양대학교 도서관장, 한국전통과학연구소장, 일본 동경대, 고베(神戶)대 객원교수, 일본 국제문화연구센터 객원교수, 수학사학회 회장, 한양대학교 수학과 교수 현직 수학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대학교 수학과 명예교수, 국제수리철학 편집위원, 어린이에게 꿈을 주는 위원회 공동위원장 전문분야 한.일 문화비교, 한.일 기업문화, 한국의 미래, 정보화 사회, 과학정책, 수학교육, 원형사관, 복잡계(카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