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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民族은 누구인가 ? 宋 鎬 洙 학장 - 개천대, 철학․博 - 1. 한민족의 뿌리의식․사상 2. 단군을 말살한 總督府史觀 3. 광복 50년, 아직도 親日史觀이 지배한다. 1. 광복 50년, 아직도 친일사관이 지배한다. 우리 나라 역사는 왜정치하에 완전히 뿌리가 잘려 버렸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단군을 신화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때 조선총독부에서 시작한 것이다. 총독부 이전에 만들어진 우리 나라의 어떤 문헌을 찾아보아도 단군신화라는 단어가 없다. 총독부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왜 총독부에서 단군을 신화라고 조작했는가. 일본이 들어와서 단군조선을 없애기 위해 계획적으로 한 것이다. 단군은 신화적인 인물이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며 단군조선을 완전히 삭탈하여 조선족의 뿌리를 없애 버리고 조선을 일본의 밑에 예속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 계획은 16년 후 완전히 일본사람의 뜻대로 실현되었다. 일본은 왜 단군조선을 없앴으며, 어떤 방법으로 없앴는가 ? 일본이 물러간 이후 아직도 우리 나라에는 친일사학자들이 국사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단군신화로 존속하여 내려오고 있다. 왜놈들이 날조한 신화론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승만 박사는 애국지사들은 모두 몰아내 버리고, 친일파 관료들을 등용시켜서 건국을 했던 것이다. 지금 남한의 학계나 재계, 관계에 보면 친일파들이 50년 동안을 장악해 오고 있다. 지금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그 세력이 커져 버렸다. 우리 속담에 ‘애꾸눈 세상에 가면 두 눈 가진 놈이 병신’이라는 말이 있다. 바른 역사를 이야기하면 미친 소리라고 치부해 버린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가 왜 이 모양인가. 단군은 신화적인 인물이지 실존인물인가. 심지어는 삼국의 시조인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나 고구려 시조인 고주몽도 신화적인 인물이라고 붙였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드릴 것은 ‘신화’라는 단어가 붙은 사람 치고 실존인물이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이다. 동서양이 모두 다 그렇다. 일본인은 단군조선 2천년을 왜 없앴을까? 47대까지 유지되어온 단군조선은 2096년간 지속되었다. 그런데 왜 없앴는지 일본으로서는 그에 대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본이란 나라는 2100년이라는 역사를 가졌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왜정 때 기원 2600년이라고 배웠을 것이다. 얼마 전에 일본에 가서 와세다대학 사학과 명예교수로 있는 이스노 교수의 논문을 입수했다. 그 교수는 그 대학의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사를 전공하여 현재 일본사 교수로 있다. 나이가 많아서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이 사람이 쓴 논문 중에서 특이한 내용이 있어 전달하고자 한다. 이 사람은 2차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이번 2차 대전은 반드시 일본이 이길 것이다” 라고 단언을 했다. 그런데 결과는 일본의 패배였다. 일본이 지니까 이 사람이 완전히 생각이 뒤바뀌었다. 그렇다면 내가 평생을 바쳐서 연구한 일본역사가 잘못 되었지 않았느냐? 내 연구가 어디서부터인가 잘못 되지 않았는가 하는 반문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종전 이후 일본사를 다른 시각에서 새로 연구를 해 보았다. 그랬더니 평생을 바쳐서 일본사를 연구한 이스노 교수 자신이 몰랐던 사건이 두 가지가 있었던 것이다. 첫째는 초대 신무왕부터 9대 개화임금까지가 전부 가공인물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명치유신 때 일본의 역사성을 높이기 위해 없는 사람의 이름을 만들어서 격상시켜 놓았던 것이다. 또 하나는 세 번의 쿠데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역사의 실사는 2100년이다. 제10대왕이 숭신앙인데 이 왕이 초대왕이다. 첫째 임금이라는 이야기이다. 그 외 1대부터 9대까지는 가공인물이었다. 일본의 실제 역사는 2600년이 아니라 2100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조선역사를 연구해 보니 그보다 훨씬 오래된 4300년 이었다. 일본보다 배가 높은 것이다. 그래서 조선을 영원한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으로서는 조선을 영원한 속국으로 만들지 않고는 안될 문제가 있었다. 일본은 섬나라로 만족하지 못하고 대륙을 점령해야겠다는 욕심을 갖게 되었다. 만주대륙, 러시아대륙, 중국대륙을 점령해야 되겠는데 대륙점령을 위해서는 조선반도라는 다리가 있어야만 대륙점령이 용이할 판이었다. 그런 이유로 조선반도를 일본역사, 일본의 영토로 만들려다 보니 조선의 오랜 역사가 거슬리는 것이었다. 총독부에서 추진하기 시작한 제1차 작업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일본보다 더 높은 조선사를 2천년으로 잘라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단군조선이다. 단군 조선은 47대 2096년간이다. 47대 임금에 2096년간이 단군조선역사이다. 단군 조선만 없애 버리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총독부에 들어앉아서 집중적으로 단군조선을 없애는 작업을 하다 보니 조선사 전문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때 조선사 전문가로 들어간 사람이 도쿄대학의 무우라교수, 교토대학의 이마니시 교수, 도쿄대학의 구로이따 교수였다. 그들에게 단군 조선 2천년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감쪽같이 없애 버리라고 지시하였다. 그 명령을 받고 작업을 시작하려고 하니 벽돌담을 쌓는 데도 조수가 필요한데 거창한 2천년 역사를 잘라 내는 데는 조수가 필요하였다. 조수는 조선족 중에서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 불러들였다. 해방 직후부터 우리 나라 역사의 사령탑이었던 이병도 박사와 고려대학에 있던 신석호 박사, 육당 최남선, 이능화이였다. 그 사람들을 조수로 해서 단군조선 2천년을 잘라내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16년 걸려서 완전히 단군조선을 없애버린 조선사가 완성되었다. 그 때 만들어낸 것이 지금도 인사동 사거리 고서점에 가면 총독부가 발간한 서른 여덟 권의 단군조선사가 있다. 그 속에는 단군조선이 없다. 우리는 그것 가지고 계속 가르치고 있다. 왜정 때는 물론이지만 해방 후에도 그걸 글자만 한글로 바꾸어서 가르쳤다. 총독부에 들어가서 단군조선 제거작업을 했던 이병도 박사, 신석호 박사, 육당 최남선, 이능화이다. 이병도 박사는 이완용의 칠촌조카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완용이 나라 팔아먹을 때 그의 비서를 했던 사람은 이병도 박사의 형이다. 해방과 동시에 이 나라의 국사교육을 완전히 친일파에게 맡겨 놓았던 셈이다. 이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역사를 마음대로 짓밟아버렸다. 중․고등학교의 국사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되는데, 그 국사편찬위원들이 전부 그 사람들인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겨 놓은 꼴이다. 아직도 단군은 신화이다. 이건 놀라운 사건이다. 내가 일부러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찾아보았다. 단군조선이 2천년, 그 이후가 약 2천년 해서 4천년이 넘는다. 그런데 현행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단군조선 2천년은 3페이지에 불과하다. 그 이후 똑같은 2천년은 3백페이지에 달한다. 이것도 2천년이고 저것도 2천년인데 단군조선 2천년은 3페이지고 그 이후 2천년은 3백페이지 이다. 이것이 우리 나라의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이다. 나한테 쓰라고 해도 단군조선을 3백페이지를 실컷 쓰고도 남는다. 종이가 모자란다. 왜 이 역사를 묵살해 버리는지 모르겠다. 뿌리 없는 나무 없고, 근원 없는 물은 없다. 학문은 국경이 없으나, 학자는 국경이 있다. 종교는 국경이 없으나, 교인은 국경이 있다. 조상 없는 자손 없고, 조국 없는 국민이 없다. 국조 단군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지구상에 조선족 7천만은 없다. 국조 단군의 조선국이 없었다면 지구상에 조국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다. 침략자 일본만이 단군을 부인하였고, 단군 부정론자는 왜적밖에 없었다. 단군 부정론자는 매국노뿐이었다. 국가에 대한 충(忠)이 곧 국조에 대한 효(孝)이다.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태어났다. 조상이 없는 이 아무도 없다. 효충은 백행의 근본이며, 충효는 만복의 근원이다. 오늘 내가 말씀드릴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역사적인 증거에 의해서 여러분들이 확실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다른 제3자들에게 가서 교육을 시키고 전달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할 예정이다. 요새 “용의 눈물”이라는 TV 드라마를 보면, 태조 이성계가 건국 후 국호를 만들려고 하면서 중국 명나라 태조에게 어느 국호가 좋은 지를 승낙 받는 장면이 나온다. ‘화령’이라는 이름과 ‘조선’ 이라는 이름 두 가지였다. 우리 나라의 이름이 둘 중에 어느 것이 좋겠는가? 화령이라는 곳은 태조 이성계가 출생한 지방이름이다. 조선은 단군이 세웠던 단군 시대의 국호이다. 이걸 가지고 간 사람은 한명회의 조부인 한상질이라는 대제학이었다. 명태조가 이걸 보고는 조선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대들의 나라는 단군이 세운 나라를 이어 받았지 않았느냐? 단군 시대에 국호가 조선이었으니까 조선으로 계승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조선으로 된 것이다. 그런데 태조 이성계는 어떻게 해서 화령과 조선이라는 이름을 넣어서 보냈을까? 태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에 꿈을 꾸었다.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금으로 만든 자를 이성계에게 건네주면서 나라를 잘 보존하고 했다. 그걸 주면서 하는 말이 “내가 단군이니라”했다. 이 나라의 주권을 잡으려면 적어도 단군에게 묵시를 받아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태조 이성계는 그 때부터 국호를 정하고 전국의 8도 관찰사로 하여금 각 지역마다 제천을 행하라 하였다. 장성군에도 아마 천제봉이나 제천봉이나 수리봉 따위가 있을 것이다. 옛날에 천제를 지내던 곳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단군을 부정할 수 없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단군 부정론자는 왜놈들밖에 없다. 또 해방 후에 중국의 유명한 학자 노간이라는 사람이 우리 나라에 와서 단군이 건국한 첫해가 BC 2333년이라 했다. 중국의 임금이나 학자들도 단군을 기정사실로 인정하였다. 신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신화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왜놈밖에 없다. 지금 어디선가 단군신화라는 말이 나오면 친일파 계통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면 틀림없다. 총독부 이전의 어떤 책에도 우리 조상들이 쓴 어떤 책에도 단군신화라는 단어가 안나온다. 왜놈들이 단군을 부정하기 위해서 날조한 것이다. 일본도 단군의 후예이다. 일본민족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단군조선 때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없었다. 단군조선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일본이 섬나라만 따로 떼어 가지고 독립을 하였다. 일본건국은 BC 97년이다. 단군조선이 끝난 뒤 한참 후에 생겨난 것이다. 또 하나 놀랄 사실은 중국의 한나라가 BC 206년에 건국이 되었다는 점 이다. 산동반도 북경이 전부 단군조선 땅이었는데 한나라가 단군조선이 끝난 뒤에 그 일대를 점령해서 일본처럼 ‘한나라’로 독립을 한 것이다. 그리고 안쪽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 가락이 생겼다. 단군조선 이후에 단군조선의 땅이 일본, 한나라, 고구려, 신라, 백제, 몽고, 가락 등 7~8개의 나라로 나누어진 것이다. 그런데 단군조선 이후에 한 곳도 5천년이 지나도 단군조선의 광역을 되찾지 못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반도전체를 왜놈한테 먹혔다가 겨우 되찾은 것이 반도 반쪽이다. 단군조선을 일본이 어떤 이유를 내세워서 없앴는가? 일본이 단군조선을 어떻게 부정했는가? 첫째는 신화라고 해서 부정을 했다. 둘째는 고고학적인 물증이 없다고 부정했다. 셋째는 단군조선의 역사가 전부 야사라고 해서 부정했다. 이 세 가지 이유를 내세워서 단군조선을 부정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대충 상식적으로 이런 것을 배웠을 것이다. 고고학적인 증거가 없지 않느냐? 단군조선은 역사의 야사에만 나오지 않느냐? 역사 선생님들이 모두 그랬다. 언뜻 들으면 그게 옳은 것 같다. 그러나 문제의 함정은 여기에 있다. 2. 한민족의 뿌리와 사상 그러면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뿌리를 잘라버리기 위해 만들어낸 이 세 가지 이유가 틀린 이유를 설명하고 그것은 순전히 왜놈들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자 한다. 이 지구상에는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이 있다. 유식한 사람은 꼭 알아야 될 것을 아는 사람이다. 꼭 알아야 될 것을 모르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다. ABC나 가나다는 반드시 알아야 될 것은 아니다. 꼭 알아야 할 것은 제 뿌리를 아는 것이다. 내 뿌리가 있으므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조상이 계셨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내 뿌리이다. 나의 혈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가 아니라면 우리는 조선족이 아니다. 단군을 부정하면 조선족이 아니다. 싫든 좋든 단군의 혈통을 이었기 때문에 조선족이다. 지구상에 7천만 조선족이 있는데 만약 단군이 실존인물이 아니었다면 7천만 조선족이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어야 될 것이다. 단군이 물려준 조선이란 나라가 있었으니 지금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단군이 물려주지 않았더라면 국가가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일차적인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내 뿌리를 모르면 무식하다는 것이다. 먼저 신화라고 하면서 단군을 부정한 이유이다.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이 지구상에 신화 붙은 사람 치고 실존인물이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증거를 설명해 보겠다. 서양사람은 그만두고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서 신화라는 낱말이 붙은 사람은 틀림없는 실존인물이다는 증거를 보여 주겠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많은 성씨는 김해 김씨로 총 6백만 명이다. 김해 김씨의 시조는 김수로왕이다. 김수로왕은 알속에서 태어났다는 탄생신화가 있다. 김수로왕이 신화가 붙었다고 실존인물이 아니라면 6백만 김해 김씨는 조상 없이 어디서 왔겠는가? 박혁거세도 말의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가 있다. 박과 같은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박씨라고 하고 이름을 혁거세라 해서 박혁거세라는 이야기이다. 단군조선 47대 동안 세습은 하나도 없었다. 초대 단군이 죽고 나면 5개의 부족장들이 모여서 다음 제사장인 단군을 선출한다. 화백제도여서 만장일치가 되어야 통과된다. 다수결이 아니다. 2대 단군이 죽고 나면 또다시 5부족장들이 모여서 또 3대 단군을 선출한다. 이렇게 단군조선 47대가 계속 유지되었다. 단군조선 역사를 읽어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 만민이 추대를 해서 임금으로 받들어 모셨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서구식 민주제도와 우리 나라에 5천년 전부터 존속되었던 화백제도를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나은가를 보여 주겠다. 지금 우리가 쓰는 제도는 희랍도시 아테네에서 처음 생긴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2500년이다. 그러나 단군시대의 제도는 5천년이 되었다. 서양의 민주제도보다 우리 나라의 민주제도가 2500년이나 앞선 셈이다. 역사적으로 먼저 나왔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더 우수하다. 지금 우리가 서구 민주주의가 최고인줄 알고 있는데 사실 민주제도지 민주주의란 말은 맞지 않다. 어떤 목적을 향해 민주적으로 해나가자는 제도일 뿐이지 그것이 이념은 아니다. 된장이나 김치처럼 화백제도와 같은 민주적인 체질은 우리 몸에 베어 있다. 우리 체질하고 맞지 않은 서양의 정치제도를 가져와 적용시키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그 화백제도는 지금도 시골에 남아있다. 시골에 가면 서낭당이 있고 정월달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그것이 단군시대 화백제도의 모습 그대로이다. 동제 제주를 뽑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전부 모여서 밤새 토론한다. 누가 제주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 토론한다. 민주적으로 뽑힌 제주는 사흘밤 사흘 낮을 얼음을 깨고 냇물에 들어가서 하루 세 번씩 목욕을 하고 정신을 가다듬어서 제사를 모시고 일년 내내 동네의 예결산을 통과시킨다. 밤중에 정한수를 떠다 제사를 지낸다. 정한수는 종교 중에서도 고등종교에 해당한다. 그런데 서양에서 들어온 야만족들의 풍속을 가져와서 우리 조상들의 전통을 미신이다. 신화다, 우상이다 해서 전부다 짓밟아 버렸다. 김수로왕도 알에서 태어났고, 박혁거세도 알에서 났고, 고주몽도 알에서 태어났다. 김수로왕이나 고주몽,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가 붙어 있어도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부정할 근거가 없다. 후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화 붙은 사람 치고 실존인물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단군신화가 왜 문제가 되는가? 이 사람들은 신화가 붙어 있어도 실존인물이고, 단군만 신화가 붙어 있어서 실존인물이 아니다라는 학설이 통할 수가 있겠는가? 지금도 일본과 서울에서 제대로 된 학자라면 단군을 인정한다. 일본도 단군의 후손이라고 밝힌 책도 발간되었다. 한가지만 더 예를 들겠다. 석가모니도 신화가 붙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어머니 마야부인이 만삭이 되어 해산하러 친정으로 갔다. 친정으로 가다가 룸비니 동산에서 쉬고 있는데 산통이 일어나서 곁에 있는 무수나무를 붙드는 순간에 오른쪽 옆구리로 튀어 나왔다. 아기는 나오자 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어가면서 한 손으로는 땅을 가르치고,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르치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 그러니까 하늘에 있던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토해 목욕을 시켜주었다. 산파가 목욕을 시킨 것이 아니다. 다른 이야기는 그냥 접어두고 오른쪽 옆구리로 나왔다는 것은 자연분만을 의미한다. 인공분만이 아닌 자연분만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어린애가 오른쪽 옆구리로 나왔다면 어린애를 낳은 왕비의 전용 화장실은 구조가 달라야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인도 네팔에서 카트만호에서 왕비가 사용하던 전용화장실 구조가 달랐었다는 고고학적인 보고는 없다. 석가와 관련된 신화라는 이야기이다. 노자 같은 사람도 어머니 뱃속에서 80살이 되어서 태어났다. 아기를 배에 담고 10달도 죽을 지경인데 80년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그런데 노자는 왼쪽 겨드랑이로 나왔다고 한다. 어떤 성인은 아버지가 없이 마구간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종교라는 게 얼마나 편협한 지 다른 사람들의 종교는 신화가 전부 가짜이고, 내가 믿는 종교는 신화가 아닌 진짜라고 한다. 종교란 그렇게 편협한 것이다. 그런 독선이 없이는 종교가 설립될 수 없다. 그래서 철학 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갖지 않는다. 학문적으로 연구한다. 그 경전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지만 종교라는 집단 속에 빠져 들어가지는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신교와 구교가 싸워 사흘 밤 사흘 낮 동안 6만 명이 죽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에게 모두 신화가 있더라도 석가나 노자나 예수가 신화가 있다고 해서 실존인물이었음을 부정한다면 어느 누가 교회에 나가겠는가?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신화가 붙어 있어도 실존인물이고, 단군은 신화가 있어서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미 설득력이 없다. 삼국유사에 보면 웅녀가 나온다. 웅녀와 환웅천왕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났다. 그래서 단군은 곰의 새끼이다. 단군이 곰새끼라면 조선족 전체가 곰새끼라는 말인가? 웅녀의 ‘웅’자는 곰을 뜻하고, ‘녀’자는 여자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벌써 틀린 것이다. 동물에게 남녀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동물은 자웅(雌雄)이라고 한다. 그러면 녀(女)자가 붙었다는 것은 ‘웅’자가 동물 곰이 아닌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즉 웅씨부족의 딸이라는 말이다. 김씨네 딸, 박씨네 딸 하듯이 곰웅자가 붙었다는 것은 웅씨부족의 딸이라는 말이다. 마씨가 있다. 말마자(馬)다. 그렇다면 마씨의 조상은 말이었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곰 동물의 이름을 빌려서 부족의 호칭으로 삼았을 뿐이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왜놈들이 단군을 부정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부정하니까 우리 나라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하나도 연구를 해보지 않고 왜놈들 흉내를 그대로 낸 것이다. 자연사를 살펴볼 때 4천년 전에 곰이 사람으로 진화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는가? 옛날에는 ‘우마구양저’, 소우자 우(牛)가, 말마자 마(馬)가, 개구자 구(狗)가, 염소양자 양(羊)가, 돼지저자 저(狙)가가 부족의 호칭이었다. 마씨 부족, 우씨부족 하는 호칭인데 그걸 동물이라고 하면 되겠는가? 옛날 5천년 전에만 쓴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사용한다. 백마부대나 맹호부대를 가 보아도 동물의 새끼는 하나도 없었다. 21세기라는 오늘날에도 동물의 이름을 조직집단의 호칭으로 쓰는데 5천년 전에 곰웅자 쓰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학문의 전당에서도 동물의 이름을 쓰고 있다. 성현의 말씀에 “효야자는 백행지본이요 만복지원”이라 했다. 효(孝)란 조상을 받드는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만 받드는 것이 효의 전부가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윗조상까지 받드는 것이 효이다. 효성을 다하는 것은 만가지 행동의 기본이라는 뜻이다. 또한 만 가지 복의 근원이 효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복받는 것은 아니다. 조상을 받들어서 복을 받는 것이다. 종교는 그 성인의 윤리와 도덕과 진리를 배우는 것이고, 복은 조상을 받드는 데서 온다. 그 원리는 간단하다. 전깃불은 발전소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50m마다 하나씩 전봇대를 거쳐서 오지만, 나한테까지 전해진 이 혈통은 단군으로부터 30년만에 한 분씩 있는 조상을 거쳐서 이어져온 것이다. 그 혈통의 줄을 타고 와 있다. 거꾸로 그 혈통의 줄을 타고 거슬러 효성을 다하는 것이 복이 그 혈통을 타고 온다는 말이다. 전기가 전깃줄을 타고 오듯이 복은 혈통을 타고 온다. 그러니까 조상을 받들어야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교육이 우습게 되어서 새도덕이니 현대적인 도덕이니 한다. 진리라는 것도 시대를 따라 변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효는 옛날에도 효이고, 지금도 효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 신화라는 것은 왜놈들의 궤변날조라는 사실을 확실히 아셨을 것이다. 두 번째로 고고학적인 물증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꼽고 있다. 단군조선시대가 실존했다면 단군시대에 쓰던 기왓장이나 청동기 같은 증거물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물증이 없으니 단군조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친일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왜놈보다 조선 왜놈이 더 문제이다. 일본 왜놈은 자기네 이익을 위해서 우리의 뿌리를 부정하지만, 우리 조선족 중에서 자기 뿌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주 큰 문제이다. 단군시대의 고고학적인 물증이 없다고 하는데 왜 없겠는가? 물증은 얼마든지 있다. 지난번에 북한에서 단군릉을 발굴했다고 하니까 남한의 신문들은 김일성이 조작했다느니 북한의 단군릉은 가짜라느니 난리였다. 나는 평생을 두고 이것만 연구한 사람이다. 단군릉 발굴이 거짓말이 될 수 없는 증거는 부지기수로 많다. 평안도에 있는 단군릉의 자료를 모아보니 문헌이 18가지나 있었다. 발해 때 문헌과 고려 때 문헌, 세종실록, 유명한 학자 허목선생이 쓴 ‘기연’에도 평안도에 단군릉이 있다는 걸 모두 기록해 놓았다. 놀라운 사건은 또 있다. 1933년 왜정 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사가 공동으로 평안도 강동에 있는 단군릉의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모금운동을 해서 보수공사를 했다. 그 때 동아일보 사장이 담양출신인 송진우 선생이었는데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보면 평안도 강동에 있는 단군릉 보수공사를 하니 모금운동에 동참하자는 기사가 1933년도의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거짓말이고 가짜가 될 수 있겠는가? 송진우 선생 같은 애국자가 오늘날의 70년 뒤에 나올 김일성을 위해서 가짜 단군릉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인가? 왜정 때 남쪽에서 단군릉에 해마다 제사를 지내러 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가보지도 않고 가짜라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단군릉에서 단군의 뼈와 왕비의 뼈가 나오고 임금이 썼던 왕관 세쪽이 나왔다. 왜정때 왜놈들이 몰래 도굴해 가고 왕관 세쪽만 흘려 놓았다. 왕관은 청동에다 금으로 도금한 거였다. 단군릉에서 발굴된 것을 북쪽에서 두 개의 연구소에다 의뢰해서 감정을 했다. 한쪽 연구소에서만 하면 오차가 있을 수 있으니까 두 개의 연구소에 따로 따로 감정을 의뢰했던 것이다. 감정해 본 결과 단군릉에서 나온 뼈와 왕관은 5,011년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청동으로 만든 왕관이 5,000년 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청동시대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행정국가가 생겼다는 것은 세계 사학계의 공통된 준칙이다. 우리 나라가 5천년 전에 청동기가 나왔다는 것은 5천여년 전에 광대한 대제국이 있었다는 결정적인 물적 증거물이다. 그런데 무엇을 부정하는가 ? 또 하나는 5,000년된 뼈가 나왔다고 하자 언론매체들은 도대체 5,000년 동안이나 지난 뼈가 어디에 있느냐며 그것만 보아도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중국 황하유역에서는 6,400년된 여자의 뼈를 발굴했다고 세계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다. 또 이집트에는 6,000년된 시카모아라는 뼈가 있다. 이집트는 나일강변의 백사장에 석회질이라는 토질이 있어서 뼈가 화석화된다. 과학적으로 화석화되는 것이다. 단군릉이 있는 곳과 함경도 쪽하고 유사한 것이 발굴되었는데 토질 때문에 뼈가 화석화된다는 이야기이다. 과학적 근거도 모르면서 오천년까지 갈 수 없다고 떠들었던 것이다. 중국에는 6,400년된 뼈가 있고 이집트에는 6,000년된 뼈가 있는데, 남의 나라에는 6천년된 뼈가 있어도 되고 우리 나라에는 5천년된 뼈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일본 왜놈보다 조선 왜놈들이 더 지독하게 말살시켜 놓아서 울화통이 터진다. 물적 증거가 단군릉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88년도에 중국을 갔다. 중국을 8번째 답사를 했는데 중국에 갔을 때 요동반도에서 백두산에 이르는 이 일대에서 중국 고고학자가 청동기를 5백여 개를 발굴했다. 몇 년 되었는가 감정을 해보니 5천년 되었었다. 중국 고고학회에서 발표한 것이다. 단군조선의 중심권에서 5천년된 청동기를 발굴했다는 것을 중국 고고학회에서 발표한 것이다. 내가 ’88년도 북경대학 세미나에 갔을 때이다. ’94년도에 바이칼호에 갔다가 조사를 하고 바이칼호 바로 옆에 이르쿠츠크라는 도시에 들렀다. 이르쿠츠크 도시에는 유앨프치니라는 러시아 학자가 있다. 이 분은 몇 년 전에 고조선 이라는 책을 썼다. 그 사람을 만나서 밤을 세워가면서 이야기를 했다. 거기는 밤 12시가 되어도 훤하다. 백야현상이다. 강둑에 앉아서 밤새 이야기를 했다. 바이칼호에는 강물이 366개가 흘러 들어간다. 희한한 일이다. 한의학에서는 인체에 유익한 약초가 365초가 더 된다고 한다. 366초라야 맞다. 또 인체 뼈마디가 전부 366골이다. 침맞는 혈이 366혈이다. 지구와 태양이 돌아가는 것이 366일만에 돌아간다. 옛날 책에는 일년이 366일이라고 되어 있다. 시전, 서전, 단기고사, 사마천의 사기 등 어느 책을 보더라도 1년은 366일이라고 되어 있다. 이유는 지구가 태양주위를 돌아가는 것이 366일만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해라고 하는 그 바이칼호 주변에 우리 조상들이 살았다. 세계에서 제일 깨끗한 물이고, 자정능력이 있다고 한다. 366개의 강물이 흘러 들어가는데도 거기만 들어가면 하나도 오염이 안 된다. 자체적으로 안에서 정화가 된다. 돌아오는 길에 몽고 울란바트로 국립대학교수들과 세미나를 했다. 연구실을 가보니 청동기를 많이 발굴해 놓았었다. 몇 년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5천년 되었다고 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다시 물었다. 역시 5천년 되었다고 했다. 몽고족과 우리 민족은 한 뿌리이다. 어린이를 났을 때 엉덩이에 파란 몽고점이 있다. 그래서 몽고에 있는 청동기는 우리 조상들의 청동기이다. 우리 나라 단기고사에 보면 4번째의 단군, 4세 단군 오사국, 단군의 동생이 오사달이라고 있었는데 오사달을 몽고왕에 봉했다. 그 때부터 몽고족이 생겨났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내가 몽고교수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몽고에 있는 청동기와 단군조선의 중심권에 있는 중국 고고학자가 발굴한 청동기, 단군릉에 있는 청동기는 모두 5천년된 것이다. 단군조선의 물적 증거가 되고도 남는다는 이야기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전부 여기서 건너간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여기서 수렵시대에 사냥을 하고 사는데 한때는 사냥감이 전부 동쪽으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동물을 잡아야 먹고살기 때문에 동물무리를 따라간 것이 알래스카와 북미를 거쳐 멕시코, 남미까지 건너간 것이다. 미국 워싱톤에 있는 스미소니언박물관에 가면 우리 조상들이 쓰던 것과 똑같은 기물이 있다. 우리 것과 똑같다. 한 족속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얼굴도 같고 말씨도 아직 우리말이 많이 남아 있다. 여자를 가시나딸, 나막신을 마카신, 여보세요를 보시오, 아파치족을 아버지족이라 한다. 또 라스베가스를 가면 그 주가 네바다 주인데 여기를 가면 큰 바다 같은 호수가 네 개가 있다. 네바다가 전부 우리말이다. 그 곳의 원주민이 우리 동족이기 때문에 우리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생활도구도 많이 남아있다. 2백년 전에 프랑스와 스페인의 백인종들이 들어가서 우리 동족들을 전부 칼로 찔러 죽이고 빼앗은 것이 오늘의 아메리카이다. 아메리카는 세계 어느 무대에서도 인권에 대해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거기에 살고 있던 우리 동족들, 우리 사촌들의 나라를 전부 칼로 찔러 죽이고 우리 동족들의 시체 위에 세운 나라가 바로 오늘날의 아메리카이다. 내가 반미주의를 부추기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역사적인 사실을 알자는 이야기이다. 몇 년 전에 미국 원주민들의 무당과 우리 나라 무당이 합동공연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멕시코 아낙네들은 어린애를 등에다 업고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옥수수를 심고 막걸리를 빚어 먹는다. 막걸리가 익으면 첫 술을 떠서 고시레 하고 나서 먹는다. 우리 나라 농부들도 농사일을 하다가 논두렁에서 음식을 먹을 때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한술 떠서 ‘고시레’ 하고 먹는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우리 나라와 같은 풍속을 가지고 있다 ‘고시’는 옛날에 밤낮없이 수렵사냥만 하고 다니던 고시가 씨앗을 뿌려서 농사 짖는 법을 가르쳐 주고, 초가집을 짓고, 온돌을 만들어서 정착생활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래서 수천 년이 지나도 은인으로 여기며 고맙다는 뜻으로 음식이 생기면 당신이 가르쳐 준 농사법으로 만든 음식이라 해서 첫술을 떠서 고시에게 먼저 바치고 나서 먹는다는 말이다. 수천년 동안 은혜를 잊지 않고 있는 순박한 농민들의 행동이 어떻게 미신이고 우상숭배인가? 끝으로 야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역사 선생님들은 야사를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부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 되었다. 지금은 정사보다 야사가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학문의 발전이라는 것은 자꾸 새로운 발전적인 정보를 들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교육이 중요하다. 단군이라는 책자를 쓴 뒤, 서울대학에서 집필자들의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를 하는데 모두 식민사학계열 교수들이고, 비식민사학교수는 나 혼자 뿐이었다. 그래서 싸움이 붙을 판에 도쿄대학에 교환교수로 가있는 사람을 불러 들였다. 그도 원고 집필자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먼저 발언을 하고 내가 두 번째로 발언을 하였다. 내가 발언을 하면서 “야사라고 해서 부정을 하는데 당신네 집의 족보는 야사냐? 정사냐? 정사는 국가에서 국고금으로 만드는 것이다. 야사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족보가 정사가 될 수 없고, 야사가 되는 것이다. 당신네 집의 족보가 야사라고 해서 부정하면 당신네 조부나 증조부 십대조를 어디 가서 찾을 것이냐? 이야기를 해보라” 하였다. 그러자 도쿄대학에 교환교수로 갔다 돌아온 사람이 내말을 되받아서 하는 말이 “선생님, 요새는 야사, 정사를 안 따집니다. 정사에도 없는 진실이 야사 속에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나의 30년 먹은 체증이 다 내려갔다. 그 사람들 입에서 자백이 나왔기 때문이다. 밤낮없이 야사 따위 가지고 떠드느냐 ? 단군의 역사는 야사에만 있다. 야사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떠들던 사람들이 이제는 야사와 정사를 따지지 않는다. 야사 속에 정사에도 없는 진실이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은 단군의 역사가 야사에 나오니까 정사에 없는 단군의 역사가 진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는 단군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다시 말하면 우리 민족의 뿌리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 “한단고기, 교원사화, 단기고사” 이런 책들은 전부 위서라고 했다. 왜 위서라고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단군조선의 역사가 자세하게 적혀 있는 책이 대충 서너 가지가 된다. “한단고기, 교원사화, 단기고사”에 자세히 적혀 있는데도 식민사학파 계열에서 그 책은 위서라고 하는 것이다. 근대적인 용어가 있고 오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삼국사기나 다른 정사에도 오자는 많다. 또 근대적인 용어가 있다고 했다. 근대적인 용어가 0.1%가 있다고 치면 99.9%는 근대적인 용어가 아니다. 그러면 0.1%의 근대적인 용어 때문에 99.9%에 해당하는 진실을 위서라고 묵살해도 된다는 것인가? 이것이 함정이다. 도대체 우리 조선족은 어디서 나왔는가 ? 우리가 나온 데가 단군이 아닌 제삼자라도 있으면 좋다. 그러면 우리 조상들이 단군 말고 누구누구가 있는데 그 중에 어느 쪽이 우리 조상이냐 하는 논쟁의 여지가 있기라도 한다. 세계가 다 인정하는 단군을 왜놈만 부정하는데, 우리가 왜 하필이면 왜놈들이 부정하는 쪽으로 나가는가 ? 북경대학의 서양희 교수가 밝힌 논문을 보면 “중국역법은 창시요동”이라 했다. 중국에서 쓰고 있는 달력은 동의족이 먼저 만들었다. 중국 한족들이 동의족으로부터 달력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는 뜻이다. 또 ‘조직공신은 창시요동’이요, 배를 만들고 노를 젓는 것, 활을 만들고 화살을 만드는 법도 동의족이 먼저 발견하여 한족이 동의족한테서 배웠다는 것이다. 문화의 원산지는 동의족이라고 했는데 우리 나라의 과거 유교적 사대주의는 전부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하고 심지어는 조상도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따로 없다. 한족이라는 것은 한나라 때 처음 생긴 것이다. 그 전에는 중국대륙을 전부 동의족이 지배했다. 지난 1월에 내가 중국 서쪽 신강성 천산산맥을 갔다왔다. 천산산맥에서 제일 높은 산이 박달봉인데 박달봉은 해발 5,445m다. 2,000m산 중턱에 올라가면 천지못이 있다. 백두산 천지는 화산폭발로 된 것이고, 천산의 천지는 자연산이다. 내려오면서 태백산을 갔다. 중국서안에 있다. 태백산은 백두산보다 1,000m가 더 높다. 백두산은 2,700m이고 중국의 태백산은 3,700m다. 거기에 가면 우리 동의족의 혈통이었던 황제의 능이 있다. 복희의 사당이 거기에 있다. 복희는 18대 환웅 중에 5세 환웅의 막내아들이다. 중국 어떤 문헌을 보더라도 신농황제가 동의족이라고 되어 있다. 심지어는 요순도 동의족이다. 연임금은 황제의 5세손이고 순임금은 황제의 8세손이다. 그런데 맹자에 보면 맹자는 저풍에서 태어나고 맹거 땅으로 이사가서 살다가 부하에서 죽었다. 그런데 그 양반은 동의족이라고 적혀 있다. 맹자라는 책은 조선왕조 5백년 동안에 고등고시 문제를 출제하는 책이다. 논어와 맹자를 읽어야 과거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고등고시의 문제를 출제하는 책에서도 맹자는 ‘순임금은 동의족’이라고 적혀 있는데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 이런 역사를 바로 잡자는 이야기이다. 학교에서는 왜놈들이 날조한 거짓말 역사, 사대주의 역사를 가르치면 이 나라 이 자손들의 사기는 어떻게 되겠는가? 영국의 사관학교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니까 영국해군들의 사기가 충천하다. 우리 민족사상의 근본정신은 홍익인간이다. 희랍정교의 신부였던 게오르규는 우리 나라를 여섯 번 왔다 갔다. 우리 나라에 와서 무궁화 한 그루를 가져다 자기 뜰 앞에 심어놓고 한국에서 가져간 무궁화가 자기 키만큼 자랐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내가 죽거든 한국인의 매장법과 같이 나무 관에 내 시체를 넣어서 땅에다 묻어다오”하는 유언을 남겼다. 이 사람이 살았을 때 중대한 예언을 하나 했다. “한국인이 낳은 이 홍익인간 사상은 21세기의 세계를 주도할 것이다”고 했다. 홍익인간 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개천경”에 들어 있다. 개천경을 발굴 하는데 20년 걸렸다. 21세기는 개천경 원리가 세계를 주도한다는 이야기이다. 유교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서삼경에 있고, 불교사상의 구체적 내용은 팔만대장경에 있다. 기독교 사상의 구체적 내용은 신구약에 있고, 홍익인간 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개천경에 있다. 개천경을 모르고서 홍익인간을 알 수는 없다. 개천경은 조화경, 교화경, 치화경 세상을 다스리는 하늘의 섭리가 들어 있다. 366조로 되어있다. 그런데 게오르규는 또 “단군의 통치이념인 홍익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섭리이자 가장 강력한 율법이다”라고 했다. 게오르규가 왜 이런 말을 했겠는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우리 나라에 와서 강화도에 있는 사고(史庫)를 폭격하고 사료를 훔쳐 갔다. 몇 년 전에 프랑스 총리가 왔을 때 우리의 자료를 가져오라고 하니까 임대조건으로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얼마나 물렀으면 여태까지 자기 것을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강화도 사고에 있던 것을 훔쳐가서 홍익인간 원리를 게오르규가 전부 보았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교과서였던 동몽선습을 이 사람이 프랑스 베르사이유 도서관 분관에 들어있는 우리의 옛날 교과서를 보았다는 것이다. 과거의 지중해 문화시대는 신본주의 시대였다. 그 후에 대서양 문화시대 에는 인본주의였다. 앞으로 태평양시대에는 신인합본사상이라고 한다. 세계 철학자들이 모여서 의논한 결과, 신본주의 시대에는 지중해 문화가 실패했고, 인본주의 시대인 대서양 문화가 실패했고, 다가오는 21세기의 태평양 시대에는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와 합한 신인합본사상이 나와야 된다고 했다. 신을 포기할 수도 없고, 인간을 포기할 수도 없다. 신과 인간이 다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프랑스 도서관에 있는 우리 나라 옛날 교과서였던 ‘동몽선습’을 보니까 신본주의를 가진 존재와 인본주의를 함께 가진 존재가 5천년 전에 태백산에 나와서 세상을 다스렸다. 앞으로 신인합본사상이 나와야 된다고 하는데 조선에서는 5천년 전에 벌써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합한 원리로 세상을 다스린 존재, 곧 단군이 나왔었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명쾌한 답변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인류역사 이래로 서양사나 동양사를 다 통털어 보아도 하나의 단일정권이 2천년 동안 계속된 경우는 단군조선 이외에는 없다. 중국의 한족들은 역사가 3백년 이상간 역사가 없다. 3백년을 못 가고 전부 망했다. 일본은 2천년이라고 하지만 세 번의 쿠데타가 있었다. 일본학자가 자백했다. 그러니까 하나의 단일정권이 2천년까지 유지된 경우는 단군조선외에는 없다. 그래서 왜놈들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단군조선만은 없애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철통같은 계획 하에서 식민사관교육을 시킨 것이다. 단군조선은 세계의 통치사상 기적을 낳았다. 그 넓은 영토를 기차도 없고 비행기도 없고, 전신 전보도 없을 때 어떻게 2천년 동안이나 평화롭게 통치할 수 있었는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정치가들은 이걸 알아야 한다. 이걸 모르니까 자꾸 겉돌고 있는 것이다. 세계 통치사의 기적을 낳은 단군조선 2천년은 지상천국이었다. 그 때의 통치원리가 무엇이고 통치제도가 무엇이냐하는 원리만 알면 해답이 나온다. 통치원리는 홍익인간이었고, 통치제도는 화백제도였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지금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게오르규가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래의 21세기는 한국이 낳은 홍익인간 사상이 세계를 주도한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홍익인간사상 안에는 신본주의와 인본주의가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철학자가 말하는 신인합본사상이 홍익인간사상 속에 들어가 있더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때 역사를 조사해 보니까 세계 최고의 통치사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시험해 보지 않고는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는 시험해 본 것이다. 단군조선 2천년을 겪어 보았다. 홍익인간 원리로 사니까 세계최고의 통치사를 장식할 수 있었다. 게오르규가 외친 바와 같이 21세기의 태평양시대는 한국이 낳은 홍익인간사상이 세계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단군의 통치이념인 홍익인간사상이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섭리이고 가장 강력한 율법이라고 외쳤던 그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증명해 보아도 다 맞다는 말이다. 우리가 개천의 원리를 응용하면 되는데 안 하니까 문제다. 석가도 이야기 하였다. “무연중생은 불가제도”라.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 없더라 했다. 자기 집에 보배를 놓아두고서 서양에서 좋은가 없는가 하고 있다. 논문을 쓰는 걸 보면 영어나 조금 써놓으면 객관성이 있는 논문이라고 하고 독일어로 주문을 달아 놓으면 대단하다고 한다. 우리의 자료를 가지고 주문 달아 놓으면 이게 역사적 근거가 있느니 없느니 따진다. 언제부터 이렇게 사대주의 학문을 했느냐 말이다. 중요한 것은 단군 조선의 홍익인간의 정신이고, 우리는 그것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